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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 창업 · 8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만드는 비용이 무너지면서 누구나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해진 것은 알리는 능력입니다. 만들기와 알리기가 왜 서로를 대신할 수 없는지, 잘 만드는 사람과 잘 알리는 사람의 짝이 왜 강한지 짚어봅니다.

AI 덕분에 만드는 일은 빠르게 쉬워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개발자를 구해 몇 달을 들여야 했을 것을, 이제는 며칠이면 작동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들고 나면 많은 사람이 같은 현실을 마주합니다. 동작은 하는데,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잘 만들면 알아서 찾아온다는 생각

흔한 믿음이 하나 있습니다. 좋은 것을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 만들어졌는데도 아무도 모른 채 사라진 제품이 훨씬 많습니다. 만드는 문턱이 낮아질수록 이 문제는 오히려 커집니다. 누구나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잘 만든다는 것 하나만으로는 더 이상 두드러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또렷하게 짚은 사람이 피터 틸입니다. 그는 제로 투 원에서 한 챕터를 통째로 유통과 세일즈에 할애하며, 많은 창업자가 제품에만 매달리다 실패한다고 봤습니다.

제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잘 팔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 피터 틸 (제로 투 원)

마크 안드레센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스타트업이 겪는 가장 답답한 일 중 하나는 더 좋은 제품을 가지고도 더 좋은 유통 경로를 가진 회사에 밀리는 것이라고요. 성공한 기술 회사들은 통념과 달리 제품 중심이 아니라 유통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그의 관찰입니다.

그렇다고 알리기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 방향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알리기만 잘하는 제품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한 번은 쓰게 만들 수 있어도, 다시 찾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결국 만들기와 알리기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둘 다 갖춰야 합니다.

만들기만 잘하면
  • 제품은 훌륭하지만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 좋은 기능이 발견되지 못한 채 묻힙니다
  • 비슷한 제품이 먼저 알려지면 밀립니다
  • 아무도 모른 채 조용히 사라집니다
알리기만 잘하면
  • 한 번은 써보게 만들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두 번째 방문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 기대와 다른 경험이 나쁜 입소문이 됩니다
  • 사람이 모여도 곧 빠져나갑니다

역사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더 잘 만든 쪽이 아니라 더 넓게 퍼뜨린 쪽이 대중을 잡은 사례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흔히 알려진 '좋은 제품이 마케팅에 졌다'는 요약은 절반만 맞습니다. 실제로 승패를 가른 것은 광고가 아니라 유통과 생태계 전략이었습니다.

01
VHS와 베타맥스
초기 베타맥스의 화질이 조금 나았지만 그 차이는 곧 사라졌습니다. VHS는 더 긴 녹화 시간과 여러 제조사에 개방한 라이선스로 가격을 낮추고 매장과 대여점을 채웠습니다. 더 넓은 유통이 표준을 가져갔습니다.
02
윈도우와 매킨토시
매킨토시가 쓰기 편한 화면을 대중화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를 여러 제조사에 개방해 값싼 호환 기종이 쏟아지게 했습니다. 닫힌 고급 모델보다 열린 생태계가 시장을 가져갔습니다.

두 사례의 교훈은 제품을 대충 만들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품은 충분히 좋아야 했고, 그 위에서 더 멀리 닿은 쪽이 이겼다는 뜻입니다. 만들기가 기본이라면, 알리기와 유통은 그 기본을 시장으로 옮기는 다리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강합니다

잘 만드는 사람과 잘 알리는 사람이 짝을 이루면, 한쪽이 비워 두기 쉬운 자리를 서로 채웁니다. 창업 현장에서 오래 회자된 '해커와 허슬러' 짝이 바로 이 구도입니다. 만드는 사람(해커)과 시장을 여는 사람(허슬러)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죠. 2012년 레이 이나모토가 여기에 디자이너를 더한 '힙스터, 해커, 허슬러'로 널리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잘 알려진 회사들의 시작에서도 이 분업이 보입니다.

01
애플
스티브 워즈니악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혼자 설계했고, 스티브 잡스는 제품 방향과 마케팅, 판매를 맡았습니다.
02
에어비앤비
네이선 블레차르지크가 첫 사이트를 직접 코딩했고, 브라이언 체스키와 조 게비아는 디자인과 사업을 이끌었습니다.
03
휴렛팩커드
빌 휴렛이 기술을 맡고 데이브 패커드가 경영을 맡는 식으로 역할을 나눴습니다.
스티브는 코드를 짠 적이 없습니다. 엔지니어도 아니었고 독창적인 설계를 한 것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설계를 바꾸고 더할 만큼은 기술을 알았습니다. -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

지금도 만드는 사람들은 알리는 짝을 원합니다. 와이콤비네이터가 공동창업자를 찾는 사람들을 조사했을 때, 엔지니어 창업자의 74퍼센트가 세일즈와 마케팅을 맡을 공동창업자를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잘 만드는 사람일수록 잘 알리는 사람의 빈자리를 또렷하게 느낀다는 뜻입니다.

혼자라면, 약한 쪽을 의식적으로 채우세요

물론 혼자 시작해도 됩니다. 다만 그럴수록 알리기를 뒤로 미루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만드는 사람이라면 알리는 법을 배우거나 알리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잘 알리는 사람이라면 만드는 법을 익히거나 만드는 사람을 찾으세요. 강한 쪽을 더 키우는 것보다 비어 있는 쪽을 채우는 것이 보통 더 큰 차이를 만듭니다.

정리하며

만드는 비용이 무너진 시대에는 잘 만든다는 것만으로 두드러지기 어렵습니다. 가치는 만들어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발견될 때 완성됩니다. 그래서 만들기와 알리기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갖춰야 하는 한 쌍입니다.

지금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면, 그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닿게 할지도 같은 무게로 함께 정해 보세요. 잘 만드신다면 잘 알리는 사람을, 잘 알리신다면 잘 만드는 사람을 찾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한 글

  • 피터 틸 - 유통과 세일즈가 제품만큼 중요하다 (제로 투 원, 11장)
  • 마크 안드레센 - 성공한 기술 회사는 유통 중심으로 움직인다 (a16z 인터뷰, 2018)
  • 레이 이나모토 - 힙스터, 해커, 허슬러 (SXSW, 2012)
  • 스티브 워즈니악 - 잡스는 코드를 짜지 않았다 (woz.org)
  • 와이콤비네이터 - 엔지니어 창업자의 74퍼센트가 세일즈·마케팅 공동창업자를 원한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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