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를 켜기 전에, PRD부터 쓰세요
클로드 코드의 낯선 용어에 압도됐다면, 도구가 아니라 메모장부터 켜세요. 무엇을 만들지 정리하는 PRD가 무엇인지, 복사해 바로 쓰는 템플릿과 가계부 예시, 큰 회사들의 방식까지 한 번에 정리했습니다.
클로드 코드를 켜보긴 했는데, 터미널이니 하네스니 MCP니 하는 낯선 용어에 압도돼 금세 닫아버린 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도구를 붙들고 씨름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먼저 켤 것은 클로드 코드가 아니라 메모장입니다.
많은 분이 만들고 싶은 게 생기면 곧장 도구부터 켜고 그 앞에서 고민을 시작합니다. 순서가 반대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방향을 정하는 일은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몫이거든요. 그 방향을 글로 정리한 것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PRD입니다. 코딩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어도 쓸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네 단계로 만들어집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보통 기획, 설계, 개발, 테스트의 네 단계를 거칩니다. 요즘은 클로드 코드 같은 AI가 이 네 가지를 꽤 잘 해냅니다. 다만 '무엇을 왜 만들지'라는 출발점만큼은 사람이 정해 줘야 합니다.
- 1기획무엇을 왜 만들지 방향을 정합니다 (사람의 몫)
- 2설계어떤 구조와 화면으로 만들지 짭니다
- 3개발실제 코드를 만듭니다
- 4테스트의도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합니다
이 가운데 첫 단계인 기획이 바로 PRD를 쓰는 일입니다. 설계, 개발, 테스트는 AI에게 맡길 수 있어도, 기획의 방향만큼은 AI가 대신 정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PRD가 결과물의 품질을 가르는 출발점이 됩니다.
PRD는 무엇을 만들지 적은 문서입니다
PRD는 Product Requirements Document의 약자입니다. 우리말로 풀면 '제품 요구사항 문서'예요. 이름은 거창하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내가 무엇을, 왜,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를 글로 정리한 문서입니다. 건물을 올리기 전에 그리는 설계도와 같은 역할을 하죠.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언제,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이걸 어떻게 쓰는지를 적으면 그게 PRD의 뼈대입니다. 평범한 말로 적어도 충분합니다.
AI는 알려준 만큼만 일합니다. 좋은 결과물의 8할은 좋은 PRD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AI가 제멋대로 해석해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 요청이 끝없이 반복됩니다
- 만들수록 방향이 산으로 가기 쉽습니다
- 처음부터 의도한 모습에 가깝게 나옵니다
- 기준 문서가 있어 수정이 빠르고 정확합니다
- 범위가 또렷해 끝이 어디인지 보입니다
예를 들어, 가계부를 만든다면
가계부 앱을 만든다고 해보겠습니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PRD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게 풀립니다. 우선 수입과 지출을 입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달에 얼마를 썼는지, 지난달보다 늘었는지 줄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면 좋겠죠. 이렇게 '무엇이 가능해야 하는가'를 하나씩 적어 내려가는 것이 핵심 기능 목록이 됩니다.
한 번에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떠오르는 대로 거칠게 적고, 뒤에서 다듬으면 됩니다. PRD에 보통 담기는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복붙해서 바로 쓰는 PRD 템플릿
아래 템플릿을 그대로 복사해 메모장이나 클로드 채팅창에 붙여넣고, 괄호 안을 내 내용으로 채워 보세요. 항목이 많아 보여도 한 줄씩만 적으면 충분합니다.
# (제품 이름)
## 한 줄 요약
- 누가, 무엇을 위해 쓰는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 누가 쓰나요 (대상 사용자)
- 주 사용자:
- 사용자의 상황이나 고민:
## 언제, 어떤 상황에서 쓰나요
- 언제:
- 어디서:
- 어떤 문제를 풀려고:
## 핵심 기능 (꼭 필요한 것부터)
1.
2.
3.
## 이번에는 안 할 것
-
## 화면 흐름
1. 앱을 켜면 ->
2. ->
3.
## 분위기와 참고
- 참고하고 싶은 서비스(예: 토스처럼 깔끔하게):
- 원하는 느낌:채워 넣은 예시: 가계부 PRD
위 템플릿을 가계부로 채우면 대략 이런 모습이 됩니다. 거창한 문장이 아니라 한 줄짜리 답들의 모음이라는 점에 주목해 주세요.
# 한 달 가계부
## 한 줄 요약
- 직장인이 매일의 수입과 지출을 빠르게 기록하고, 한 달 소비 흐름을 한눈에 보는 앱
## 누가 쓰나요 (대상 사용자)
- 주 사용자: 가계부를 써본 적은 있지만 번번이 포기한 20~30대 직장인
- 사용자의 상황이나 고민: 입력이 번거로워 며칠 만에 그만두게 된다
## 언제, 어떤 상황에서 쓰나요
- 언제: 돈을 쓴 직후, 또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
- 어디서: 주로 휴대폰에서
- 어떤 문제를 풀려고: 이번 달에 얼마나 썼는지, 지난달보다 나아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
## 핵심 기능 (꼭 필요한 것부터)
1. 수입과 지출을 금액, 날짜, 분류와 함께 입력
2. 이번 달 총지출과 남은 예산을 한 화면에 표시
3. 지난달과 이번 달 지출을 비교해 늘었는지 줄었는지 보여주기
4. 식비, 교통처럼 분류별로 얼마를 썼는지 정리
## 이번에는 안 할 것
- 은행 계좌 자동 연동 (직접 입력으로 시작)
- 여러 명이 함께 쓰는 공유 가계부
- 결제 기능
## 화면 흐름
1. 앱을 켜면 -> 이번 달 요약(총지출, 남은 예산)이 먼저 보인다
2. 가운데 + 버튼 -> 금액과 분류를 골라 한 건 입력
3. 아래 탭 -> 지난달과 비교한 그래프 화면
## 분위기와 참고
- 참고하고 싶은 서비스: 토스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 원하는 느낌: 입력이 3초 안에 끝나는 가벼운 느낌이 정도만 적어도 AI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또렷하게 이해합니다. 처음부터 이만큼 나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 줄짜리 초안에서 시작해 점점 채워 가면 됩니다.
큰 회사들은 어떻게 쓸까
PRD는 입문자만 쓰는 도구가 아닙니다. 큰 기술 회사들은 오래전부터 만들기 전에 문서로 먼저 합의하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은 '거꾸로 일하기(Working Backwards)'라는 방식을 씁니다. 제품을 만들기도 전에, 출시 후 내보낼 보도자료와 고객이 자주 묻는 질문(FAQ)을 미리 써 보는 것이죠. 고객 입장에서 '이게 왜 좋은가'를 먼저 또렷하게 적고, 그 그림에 맞춰 거꾸로 개발을 진행합니다.
형식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이런 항목이 담깁니다. 우리가 쓰는 한 장짜리 PRD도 결국 같은 일을 가볍게 하는 셈입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은 한 문장입니다. 만들기 전에, 무엇을 누구를 위해 왜 만드는지를 글로 먼저 맞춘다. 거대 기업의 두꺼운 문서든 우리의 한 장짜리 메모든, 정신은 같습니다.
메모장에서 시작해 클로드 채팅창에서 다듬으세요
초안을 다 적었다면, 이제 클로드 코드가 아니라 클로드 채팅창을 엽니다. 작성한 글을 붙여넣고 'PRD로 다듬고 싶은데, 빠진 부분이나 더 구체적으로 적을 곳을 물어봐 줘'라고 부탁해 보세요. AI가 되묻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빈틈이 메워집니다.
이렇게 수십 번을 고쳐 한 편의 또렷한 문서가 되면, 그 PRD를 클로드 코드 프로젝트 폴더에 넣어 둡니다. 그러면 AI가 무엇을 만들지 정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개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 도구를 켤 차례가 온 것이죠.
입문자를 위한 팁
- 전문 용어는 필요 없습니다. 친구에게 설명하듯 평범한 말로 적으면 충분해요
- 처음부터 완벽하게 쓰려 애쓰지 마세요. 일단 거칠게 적고, 클로드 채팅창과 대화하며 다듬는 편이 빠릅니다
- 한 번에 다 만들려 하지 마세요. 가장 중요한 기능 하나부터 PRD에 담고, 동작을 확인한 뒤 살을 붙입니다
- '안 할 것'을 적는 습관이 특히 중요합니다. 범위가 무한정 늘어나는 것을 막아줘요
정리하며
PRD는 거창한 기술 문서가 아닙니다. 무엇을, 왜,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를 내 언어로 정리한 메모에 가깝습니다. 코드를 전혀 모르더라도 누구나 쓸 수 있죠.
바이브코딩의 시대에는 '얼마나 코드를 잘 짜는가'보다 '얼마나 명확하게 설명하는가'가 결과물을 가릅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PRD입니다. 뭐부터 시작할지 모르겠다면, 클로드 코드 말고 메모장부터 켜세요. 그 한 장이 전체 과정을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